디자인과 인간심리 – 디자인이라는 도전

디자인은 사용자, 상황, 그리고 상품의 삼각관계에 들어가는 모든 변수를 고려하고 조율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디자인의 자연스러운 진화

좋은 디자인은 진화한다. 디자인된 것이 사용되면서 문제점이 발견되고, 수정되고, 또다시 사용되면서 재수정되는 반복과정이, 시간과 에너지 그리고 재원이 고갈되지 않는 한 지속된다. … 이런 과정이, 오랜 시간을 거쳐 기능적이며 미적으로도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 낸다.

나쁜 점이 좋게 고쳐지고 좋은 점은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나타내는 전문용어를 ‘언덕오르기 (hill-climbing)’라고 한다. 마치 어두운 밤에 언덕을 오르는 것과 유사하다.

디자인의 진화를 가로막는 힘

자연스러운 진화를 방해하는 하나의 부정적인 힘은 시간이다. 새로운 모델의 디자인 과정은 대개 구 모델이 고객에게 선보이기도 전에 시작된다. 더구나 고객의 사용 경험을 듣거나 의견을 모으는 방식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 또 다른 힘은 새로 만든 제품의 디자인을 앞선 것과는 다르게 보이고, 구별이 되며, 눈에 띄게 하려는 압박감이다. 좋은 상품 한 가지를 고집하는 데 만족하거나 자연스러운 진화가 천천히 완전한 물건을 만들어 가도록 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매년 ‘최신형이고, 더 개량된’ 모델을 생산해야 하며, 구형을 출발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형에는 사용치 않던 새 특징을 집어넣는 것이다. 아주 많은 경우 그 결과로 소비자는 피해를 볼 뿐이다.

개성이라는 골치 아픈 문제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관여했다는 표시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다른 회사도 비슷한 유형의 제품을 만든다면, 이것들이 각기 다르게 만들어져 다른 상품들과 구별되어야만 한다. 때로는 이러한 태도가 좋은 아이디어나 혁신을 가져오지만 개성이라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불필요한 어려움만 가져다주는 혼란스러운 재앙이 될 수 있다. 판매를 해야 하는 시장경쟁의 원리에 따른다면, 어떤 회사가 그야말로 완벽한 상품을 만들었다고 해도 다른 회사들은 이것을 변화시키고 다르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잘된 상품을 고쳐 더 나쁘게 만들수도 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자연스러운 디자인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타자기: 디자인 진화의 사례사

여러분은 컴퓨터 키보드의 예에서 디자인이 반복되는 과정과 실험들을 관찰할 수 있다. 기본적인 키보드의 배열은 국제협약에 의해 표준화되어 있다. 하지만 컴퓨터에는 표준화되지 않은 여분의 키가 필요하다. 어떤 키보 드는 전환(Shift) 키와 ‘z’키 사이에 표준 이외의 키가 하나 더 있다. 귀환(Return) 키는 모양도 위치도 다르다. 컴퓨터 자판에 있는 ‘통제(Control), 이탈(Escape), 정지(Break), 삭제(Delete) ‘ 같은 특수 키와 깜박이(Cursor) 를 움직이는 화살표 키들의 위치는 만들어진 연도에 따라 다르고, 심지어는 한 회사 제품인데도 다르다. 사용자는 헷갈리고 화만 난다.

하지만 컴퓨터에서는 글자를 융통성 있게 배열할 수 있다. 키의 배열을 쿼티식에서 드보락식으로 바꾸는 것은 쉬운 문제이다. 명령 하나면 해결된다. 하지만 드보락 배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키를 다시 배열하고 각 키에 있는 표시를 무시하고 암기를 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각 키를 전자표시판으로 만들어 키의 이름올 자유롭게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컴퓨터 기술의 발달이 표준화를 필요없게 만들고, 각자가 좋아하는 식의 자판을 사용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디자이너는 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나게 되는가?

  1. 디자인 사회의 보상체계가 미적인 것을 최고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수 디자인 전람회에 가 보면 우수상을 탄 시계는 시간을 읽기도 힘들고 경보(alarm) 시간 을 맞추기도 힘들며 깡통따개는 신비스럽기조차 하다.
  2. 디자이너 자신은 대개 전형적인 사용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3. 디자이너는 디자인을 주문한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그들 또한 일반적인 사용자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미적인 면을 우선 고려하는 것

상은 일반적으로 디자인의 한 면만에 주어지는 것이지 사용하기 쉬운 특성 같은 것을 포함한 다른 측면들은 무시하기 때문이다.

미적인 고려가, 당연하게, 박물관이나 디자인 센터에서도 우선이다.

디자인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디자인한 물건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검토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는 전형적인 사용자가 아니다

디자이너는 종종, 자신을 전형적인 사용자로 생각한다. 말하자면, 그들도 사람이고 그들이 디자인한 물건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에게 요구되는 전문성과 사용자에게 요구되는 전문성 간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디자이너는 디자인하는 동안에 자기가 설계하는 장치에 대해 익숙한 전문가가 된다. 이에 반해 사용자는 그 장치를 써서 자기가 하려는 과제에 대해서만 익숙한 전문가인 것이다.

디자이너는 자기가 다루고 있는 제품에 대해서는 아주 익숙해져서 어려움을 일으키기 쉬운 부분을 찾아내거나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비록 디자이너가 사용자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경우라도, 자신이 디자인하는 장치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고 너무 자주 만지기 때문에 그들은 거의 머리 속의 지식으로 그 장치를 다루게 된다. 하지만 처음 사용하는 사람이나 자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장치에 붙어 있는 정보, 즉 세상 속의 지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바로 이 점이 디자이너와 일반 사용자의 기본적인 차이이며, 이 점을 고려해서 디자인하는 것이 디자인의 근본이 되어야 한다.

디자인의 고객도 사용자가 아닐 수 있다

디자이너는 고객을 만족시켜야 하는데, 이들 고객이 최종 사용자가 아닐 수 있다. 제조업자는 주로 이런 의사결정자들, 직접적인 고객만을 염두에 두지 최종 사용자는 고려하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는, 특히 정부나 산업쳬에서는, 비용이 최우선이 된다.

디자인 과정의 복잡성

디자인이란, 단지 하나의 독특한 제품이 남게 될 때까지 여러 제약을 연속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이다. 사용자라는 변수와 상황 그리고 상품에 대한 종합적 고려를 해야한다.

특정한 사람을 위한 디자인

평균적인 사람이란 없다. 하나의 디자인으로 모든 사람에게 맞는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문젯거리이다. 즉, 모든 종류의 사람이 그것을 사용하리라고 예상될 때 디자인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의식적인 주의력에는 한계가 있다. 즉, 한 가지에 주의의 초점을 두면 다른 것에 대한 주의는 줄게 된다. 이 현상을 심리학자들은 ‘선택 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주의 초점을 너무 좁혀 놓으면 굴을 통해 보는 것 같이 주변의 것을 보지 못하게 된다.

디자이너가 겪게 되는 두 가지의 치명적인 유혹

기능추가주의를 치료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능추가의 기피 혹은 억제이다.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기능만을 허용하고 나머지 기능은 없어도 일을 처리하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일단 장치가 복합적인 기능올 갖게 되면, 아무래도 복수의 통제기, 조작방법, 복잡한 설명서가 필요해치고, 그렇게 되면 복잡성이 늘어 어려움과 혼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두번째는 조직화이다. 조직하고 단원화하는, 즉 분할해서 처리한다는 전략을 사용한다. 같은 종류의 기능들을 떼어, 다른 기능 집단과는 구분해서 별도의 장소에 숨겨놓는다고 생각해보자. 전문용어로 단원화(modularization)라고 한다. 분리된 기능 단원을 만들어, 여기에는 한정된 수의 통제기를 가지고, 비슷한 과제나 다소간 구별되는 일들만을 다루도록 전문화한다. 이 방법의 장점은 각 분리된 단원이 한정된 기능과 특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 장치가 갖는 특성의 총계는 변하지 않는다. 복잡한 통제기의 집합이더라도, 이를 적절한 단원으로 나누어 놓으면 복잡성을 정복할 수 있게 된다.

디자이너와 사용자 모두가 복잡성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고객이 잘 못된 이미지를 숭배하고 좋아하는 것이다.

잘못된 이미지는 기술적으로 우수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전화기, 텔레비전, 식기세척기, 세탁기, 자동차의 계기판, 오디오/비디오 세트 등과 같은 기기에 너무 과도하게 복잡성이 첨가되는 이유이다. 교육 이외에는 치료법이 없다. 여러분은 아마 이것이 사용하는 사람에게만 피해가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제조업자나 디자이너는 시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제품을 만든다. 따라서 만약 여러 사람이 이런 어려움을 경험한다면-현재 증거로는 실제 그렇다-우리는 몇 사람의 만족을 위해 나머지 대다수의 사람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언뜻 보기엔 멋지고 현란한 색깔의 장치를 구입하고도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다.

컴퓨터 시스템의 결점

  • 비가시적으로 만들어라. 실행의 간격을 넓혀라, 다음에 어떤 조작을 해야 되는지에 대한 단서를 없애라. 평가의 간격이 있게 만들어라. 즉, 피드백을 없애고, 지금 한 행위에 대한 어떤 가시적인 결과도 제시하지 말아라. 공백화면이라는 횡포를 부려라.
  • 인위적으로 만들어라. 컴퓨터로는 이를 쉽게 할 수 있다. 불명료한 명령어나 행위를 사용하라. 의도된 행위와 실제 해야 할 일간의 대응을 멋대로 하라.
  • 일관성을 없애라. 즉, 규칙을 수시로 바꿔라. 어떤 양식(모드)에서는 한 방식으로 하도록 하고 다른 양식에서는 다른 방식을 쓰도록 하라. 이것은 특히, 두 양식을 왔다갔다 할 경우 아주 효과적이다.
  • 조작을 알기 어렵게 만들어라. 특수한 언어와 약자를 이용하라. 의미 없는 오류 메시지를 이용하라.
  • 무례하게 행동하라. 사용자가 오류를 범하면 계약의 위반이라고 경고하라. 호통치고, 조롱하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려라.
  • 조작을 위험하게 만들어라. 한 번의 오류로 귀중한 작업을 망칠 수 있게 하라. 최악의 사태가 쉽게 일어나도록 하라. 하지만 주의사항은 설명서에 포함시켜놓아 사람들이 불평하면, “설명서도 읽지 않았습니까?” 하면 된다.

아직 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컴퓨터 기술은 아직 젊고, 그 잠재력을 모색하고 있는 단계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할 수 있다는 비밀스런 입문식을 통과하지 못하면, 컴퓨터 사용자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쟁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는 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와 유사하다. 용감하고 모험적이며 기계 적성이 있어야만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디자이너가 원하는 어떤 방식으로도 모양, 형태, 외관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컴퓨터는 기계치고는 독특하다. 컴퓨터는 카멜레온같이 상황에 따라 모양과 외관을 바꿀 수 있다. 컴퓨터의 조작은 재료보다 외관에 대해 수행되기 때문에 ‘하드’라기보다는 ‘소프트’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탐색가능한 시스템: 실험을 권장하기

  1. 시스템의 각 상태에서, 사용자들에게 허용되는 행위들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고, 또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한 방법은 가시성으로서 여러 가능성을 제시하고 새로운 생각, 방법을 상기하고 탐색하도록 한다.
  2. 각 행위의 결과가 가시적으로 되어야 하며 동시에 이해하기 쉬워야 한다. 이 특성이 사용자로 하여금 각 행위의 결과를 배우고, 시스템에 관한 좋은 심성모형을 형성하도록 하며, 행위와 결과의 인과적 관계를 배우도록 한다. 시스템 이미지가 그러한 학습이 일어나도록 하는 데 결정적이다.
  3. 어떤 행위가 대가를 치뤄서는 안 된다. 행위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나타날 때, 먼저 상태로 쉽게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컴퓨터 시스템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먼저 상태로 되돌릴 수 없는 행위의 경우는, 지금 하려고 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 실행 전에 확실히 해야 한다. 그리고 계획을 취소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행위를 하기 힘들게, 탐색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대부분의 행위는 대가를 치르지 않아야 하고 탐색가능하며, 발견하기 쉬워야한다.

컴퓨터 사용의 두 양식

하나는, 실제 일할 사람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이를 명령에 양식(command mode), 혹은 삼인칭 상호작용이라고 부르자. 다른 하나는 자신이 직접 조작하는 것이다. 이를 직접 조작 양식(direct manipulation mode) 혹은 일인칭 상호작용이라고 부르자. 둘간의 차이는 운전사가 차를 모는 것과 자신이 직접 모는 것의 차이이다. 서로 다른 이 두 양식이 컴퓨터 안에 있다.

대부분의 컴퓨터 시스템은 명령에 양식, 삼인칭 상호작용이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서 특수한 ‘명령에’ 들을 쳐야 하며, 이것들을 배워야 한다. 어떤 컴퓨터 시스템은 직접 조작, 일인칭 상호작용을 사용한다.

두 상호작용 양식이 모두 필요하다. 삼인칭의 상호작용은 힘들고 반복적인 일이 요구되는 상황에 적합하고, 또 일을 적절히 수행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 시스템(혹은 사람)이 있는 경우에도 적절하다. 때론 운전사가 있는 것이 낫다. 그러나 일이 중요하고, 새로우며, 잘 규정되어 있지 않고 혹은 무엇을 해야할지 잘 모를 때는 직접적인, 일인칭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직접 통제가 필수적이며, 중간에 다른 것이 끼어들면 방해가 된다.

내가 특정한 과제를 하고 있는 것이지,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경우는 컴퓨터는 눈에 보이지 않게 비가시적이 되는 것이다. 이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친 것은 아니다. 컴퓨터 시스템을 비가시적으로 만들어라, 이 원칙은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에 관계없이 어떤 종류의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에서도 모두 적용된다.

미래 컴퓨터는 비가시적이 된다


출처: 「디자인과 인간 심리」 도널드 노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