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륵(鷄肋).” 닭의 갈비뼈. 먹자니 살이 별로 없고, 버리자니 아까운 것. 이 한 단어는 삼국 시대의 패자 조조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큰 딜레마에 빠졌던 순간을 상징합니다. 219년, 한중 땅을 놓고 벌어진 유비와의 치열한 공방전 속에서 조조는 진퇴양난의 수렁에 빠졌습니다. 이 땅을 포기하자니 지금까지 쏟아부은 막대한 자원과 희생이 아깝고, 계속 싸우자니 승산 없이 피해만 커져가는 상황. 이 모습은 오늘날,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투자했지만 좀처럼 성과가 나지 않는 프로젝트를 끌어안고 고뇌하는 수많은 리더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집니다.
조조의 계륵 고사는 단순히 버리기 아까운 것을 뜻하는 사자성어를 넘어, 리더가 언제 ‘포기할 줄 아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줍니다. 본전 생각에 더 큰 손실을 부르는 ‘매몰비용의 오류(Sunk Cost Fallacy)’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이 1800년 전의 이야기는 때로는 과감한 포기와 전략적 후퇴가 더 큰 성공을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일 수 있음을 가르쳐줍니다.
한중, 조조의 덫이 되다
놓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
한중은 익주(촉)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관중 지방을 지키는 방패 역할을 하는 핵심적인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유비에게 한중은 북벌의 전진기지이자 촉 땅을 안전하게 지키는 생명선이었고, 조조에게는 유비의 북상을 막고 천하 통일을 완성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었습니다. 이 땅의 중요성을 알았기에 조조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한중으로 향했고, 유비 역시 관우를 제외한 모든 핵심 장수(장비, 마초, 조운, 황충)를 총동원하며 사활을 건 승부를 준비했습니다.
끝나지 않는 소모전과 리더의 고뇌
하지만 전투는 조조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습니다. 유비군은 법정의 뛰어난 계책과 황충, 조운 등 노장들의 용맹을 앞세워 조조군을 계속해서 괴롭혔습니다. 특히 정군산 전투에서 조조가 아끼던 용장 하후연이 전사하면서 전세는 급격히 유비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조조는 직접 전선에 나서며 반격을 시도했지만, 유비군은 철벽처럼 버텅고 보급로는 길어져 식량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중은 조조에게 계륵과 같은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 먹자니 살이 없다: 계속 싸워 이긴다 해도, 이미 너무 많은 병력과 물자를 소모하여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컸습니다.
- 버리자니 아깝다: 하지만 이곳을 포기하는 것은 유비에게 북벌의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자,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기에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닭 국을 먹던 조조는 그릇에 남은 닭갈비를 보며 자신의 처지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그날 밤의 암호를 묻는 하후돈에게 그는 무심코 “계륵이다”라고 말합니다.
양수의 죽음, 그리고 조조의 결단
천재의 통찰과 비극적 최후
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의 속뜻을 정확히 꿰뚫어 본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조조의 주부(主簿)였던 양수였습니다. 그는 ‘계륵’이라는 암호를 듣자마자 즉시 자신의 부하들에게 철수를 준비하라고 지시합니다. 놀란 부하들이 이유를 묻자, 양수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무릇 닭갈비란,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먹을 것은 없는 부위입니다. 이는 왕께서 한중을 그런 곳으로 여기고 계시다는 뜻이니, 조만간 철수 명령을 내리실 것입니다.”
이 소문은 순식간에 군 전체에 퍼졌고, 조조는 자신의 속마음을 간파하고 군심을 동요시킨 양수에게 군기를 문란하게 했다는 죄를 물어 처형해버립니다. 양수의 죽음은 그의 비범한 재주를 시기한 조조의 속 좁은 행동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철수라는 중대한 결정을 앞두고 내부의 혼란을 막고 리더십을 재확립하려는 냉혹한 조치로 볼 수도 있습니다.
포기할 줄 아는 용기
결국 양수의 예측대로, 조조는 한중에서 모든 군대를 이끌고 철수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이는 단순히 전투에서 패배하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북방을 평정하고 천하를 호령하던 패자가, 라이벌 유비에게 전략적 요충지를 제 발로 내어주고 패배를 인정한 사건이었습니다. 엄청난 자존심의 상처를 감수해야 하는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단 덕분에 조조는 더 큰 손실을 막고 주력 부대를 보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한중이라는 하나의 전선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대신, 남은 자원을 이용해 내부를 안정시키고 관우가 이끄는 형주군이라는 새로운 위협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철수는 ‘실패’가 아니라, 더 큰 그림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당신의 ‘계륵’은 무엇인가?
조조의 고뇌는 오늘날 수많은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리더들이 매일 겪는 딜레마와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매몰비용의 오류’라는 심리적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 “지금까지 투자한 돈이 얼만데…”: 이미 수억 원을 쏟아부은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 시장의 반응은 차갑고 성공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지만, 지금까지의 노력이 아까워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 “여기까지 온 시간이 아까워서…”: 몇 년간 준비해 온 고시 공부. 합격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사라지지만, 그동안의 세월이 억울해서 다른 길을 선택할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 “우리가 세운 계획인데…”: 야심 차게 시작한 마케팅 캠페인. 데이터는 명백히 실패라고 말하고 있지만, 담당자의 자존심과 초기 계획에 대한 집착 때문에 방향을 바꾸지 못하고 예산만 낭비합니다.
이 모든 상황이 바로 현대판 ‘계륵’입니다. 먹자니 이익은 없고, 버리자니 지금까지의 투자가 아깝습니다. 하지만 조조의 사례는 우리에게 명확한 교훈을 줍니다. 위대한 리더는 시작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멈추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포기는 실패가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프로젝트를 중단하거나 방향을 트는 ‘피봇(Pivot)’은 결코 실패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변화하는 상황을 인정하고,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자원을 재분배하는 현명하고 용기 있는 리더십의 증거입니다.
- 손실을 최소화하는 결단: 계륵과 같은 프로젝트를 계속 끌고 가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과감한 중단은 미래의 더 큰 손실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 기회비용의 회복: 쓸모없는 프로젝트에 묶여 있던 인력과 자원을 새로운 가능성이 있는 곳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 포기는 새로운 기회를 여는 문이 될 수 있습니다.
- 조직의 학습과 성장: 실패한 프로젝트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조직은 귀중한 교훈을 얻고, 다음 프로젝트의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리더의 역할은 배가 가라앉고 있을 때 선원들에게 더 열심히 노를 저으라고 독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때로는 배를 버리고 새로운 배로 갈아타라고 명령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당신의 조직이 지금 붙들고 있는 ‘계륵’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닭갈비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과감히 내려놓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설 때입니다. 그것이 바로 1800년 전, 난세의 영웅 조조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생존의 지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