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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멩이를 굴려 바위를 부수는 힘: 손자가 말하는 ‘기세(勢)’의 비밀

    돌멩이를 굴려 바위를 부수는 힘: 손자가 말하는 ‘기세(勢)’의 비밀

    천재 한 명이 평범한 열 명을 이길 수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손자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심지어 평범한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이 천재적인 개인들의 집합을 압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그 비밀은 바로 ‘세(勢)’에 있습니다. ‘세’는 흔히 기세, 모멘텀, 또는 잠재적 에너지로 번역되며, 개개인의 능력을 뛰어넘어 조직 전체가 폭발적인 힘을 내게 만드는 시스템의 힘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뭉치면 강하다”는 식의 구호가 아닙니다. 조직의 구조, 소통 방식, 그리고 목표 설정이 어떻게 맞물려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정교한 메커니즘입니다.

    손자병법 제5편 ‘세(勢)’는 리더의 역할이 뛰어난 개인을 발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데리고도 승리할 수밖에 없는 ‘판’을 설계하는 데 있음을 역설합니다. 마치 가파른 산비탈에 놓인 둥근 돌이 스스로의 힘이 아닌 지형의 ‘기세’에 의해 엄청난 파괴력으로 굴러가듯이, 잘 설계된 조직은 시스템의 힘으로 스스로 목표를 향해 달려가게 됩니다. 아마존이 어떻게 세계 최대의 이커머스 제국을 건설했는지, 로마 군단이 어떻게 수적으로 우세한 적들을 연달아 격파했는지, 그 근본 원리를 파헤쳐보면 모두 이 ‘세’의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이제부터 조직의 운명을 바꾸는 기세의 비밀, 그 문을 열어보겠습니다.


    기세란 무엇인가? – 정(正)과 기(奇)의 조화

    기세를 이해하기 위한 첫 번째 열쇠는 ‘정(正)’과 ‘기(奇)’의 개념을 아는 것입니다. 손자는 “무릇 싸움이란 정(正)으로 맞서고 기(奇)로 이긴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전투의 기본 원칙이자, 기세를 만들어내는 핵심 동력입니다.

    첫째, 정병(正兵): 예측 가능한 힘, 조직의 중심축

    ‘정(正)’은 정공법, 즉 원칙에 따라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는 주력 부대를 의미합니다. 이들은 적과 정면으로 대치하며 전선을 유지하고, 조직의 안정성을 책임지는 역할을 합니다. 비즈니스에서 ‘정’은 회사의 주력 상품,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핵심 비즈니스 모델, 표준화된 업무 프로세스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없다면 조직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리고, 새로운 시도를 할 여력조차 잃게 됩니다. 탄탄한 ‘정’은 기세가 발휘될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됩니다.

    둘째, 기병(奇兵): 예측 불가능한 힘, 승리의 결정타

    ‘기(奇)’는 변칙, 즉 적의 허를 찌르는 예상 밖의 움직임을 보이는 별동대입니다. ‘정’이 적의 힘을 정면에서 받아내는 동안, ‘기’는 적의 약점을 파고들어 전세를 한 번에 뒤집는 결정타 역할을 합니다. 비즈니스에서 ‘기’는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신기술 개발(R&D), 고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창의적인 마케팅 캠페인, 경쟁사가 예상치 못한 신사업 진출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이는 무한하며, 그 운용은 하늘과 땅처럼 끝이 없습니다.

    셋째, 정과 기의 상호작용: 기세의 탄생

    중요한 것은 ‘정’과 ‘기’가 별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호작용하며 기세를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안정적인 ‘정’이 버텨주기 때문에 ‘기’가 마음껏 날뛸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반대로 ‘기’의 성공적인 공격은 ‘정’이 받는 부담을 덜어주고, 전선을 유리하게 이끕니다. 애플을 예로 들어봅시다. 아이폰이라는 강력한 ‘정’이 창출하는 막대한 현금 흐름과 안정적인 플랫폼 생태계가 있기에, 애플워치, 에어팟, 그리고 미래의 애플카와 같은 혁신적인 ‘기’에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습니다. ‘정’과 ‘기’가 끊임없이 순환하며 서로를 강화시키는 구조, 이것이 바로 멈추지 않는 성장 모멘텀, 즉 ‘세’의 본질입니다.


    시스템이 천재를 이긴다 – 조직 구조와 편제

    손자는 “많은 사람을 지휘하기를 적은 사람을 지휘하듯 하는 것은 편제와 신호 덕분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주먹구구식 조직이 아니라, 잘 짜인 시스템을 통해 조직의 효율을 극대화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기세는 바로 이 시스템의 산물입니다.

    첫째, 형(形)과 세(勢): 구조가 에너지를 만든다

    손자는 ‘형(形, Form)’과 ‘세(勢, Momentum)’를 구분합니다. ‘형’은 조직의 구조, 진형, 시스템 등 눈에 보이는 형태를 의미합니다. ‘세’는 그 ‘형’ 안에 잠재되어 있다가 특정 조건에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댐에 가두어진 물의 형태가 ‘형’이라면, 수문을 열었을 때 쏟아져 나오는 물의 힘이 ‘세’입니다. 리더의 역할은 최고의 선수들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형’을 잘 설계하여 최대의 ‘세’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로마 군단은 개개인의 전투 능력 면에서 게르만족이나 켈트족에 비해 압도적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레기온(Legion)’이라는 표준화된 편제와 ‘마니풀루스(Manipulus)’라는 유연한 전술 단위를 통해 어떤 지형과 상황에서도 대형을 유지하며 싸울 수 있는 강력한 ‘형’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 시스템의 힘이 바로 로마 군단이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연전연승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둘째, 현대 조직에의 적용: 애자일(Agile) 조직

    전통적인 피라미드형 관료제 조직은 안정적인 ‘정’의 역할에는 강하지만,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는 ‘기’의 운용에는 취약합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애자일(Agile)’ 조직입니다. 음악 스트리밍 기업 스포티파이(Spotify)에서 시작된 ‘스쿼드(Squad)’, ‘트라이브(Tribe)’, ‘챕터(Chapter)’, ‘길드(Guild)’ 모델은 손자의 편제 원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손자병법의 군대 편제스포티파이의 애자일 조직역할과 기능
    오(伍), 십(什), 졸(卒)스쿼드(Squad)특정 임무(제품 기능 개발 등)를 수행하는 소규모 자기완결적 팀. 빠른 의사결정과 실행을 통해 ‘기’의 역할을 수행한다.
    여(旅), 군(軍)트라이브(Tribe)관련된 여러 스쿼드가 모인 집단.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며 시너지를 창출한다.
    병과(보병, 기병, 궁병)챕터(Chapter) & 길드(Guild)동일 직군(예: 개발자, 디자이너)의 전문가 집단. 지식 공유와 역량 강화를 통해 조직 전체의 전문성(‘정’의 기반)을 강화한다.

    이처럼 현대 조직은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부품이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작은 유기체들의 연합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앙의 통제를 최소화하고 현장의 자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끊임없이 혁신의 ‘기세’를 만들어내기 위함입니다.


    혼란 속의 질서 – 명확한 신호 체계와 소통

    아무리 훌륭한 조직 구조(‘형’)를 갖추었더라도, 구성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하면 ‘세’는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수만 명의 병사들이 뒤엉켜 싸우는 혼란스러운 전장에서, 손자는 어떻게 질서를 유지하고 군대를 하나처럼 움직이게 했을까요? 그 해답은 ‘신호(信號)’에 있습니다.

    첫째, 보이지 않아도 들리게, 들리지 않아도 보이게

    손자는 “낮에는 깃발과 깃대를 사용하고, 밤에는 징과 북을 사용한다”고 말했습니다. 시끄러운 전장에서 병사들은 장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어두운 밤에는 깃발을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상황에 맞는 가장 명확하고 단순한 신호 체계를 사용하여 모두가 지휘관의 의도를 오해 없이 이해하고 즉각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 경영에서 ‘전략적 소통의 명료성’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회사의 비전과 목표가 복잡하고 추상적인 구호에 그친다면, 직원들은 각자 다른 해석을 하고 다른 방향으로 힘을 쏟게 됩니다. 이는 조직의 에너지를 분산시키고 기세를 약화시키는 주된 원인입니다. 구글이 사용하는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 시스템은 손자의 신호 체계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 Objective (목표): “사용자 참여도를 극대화한다”와 같이 질적이고 영감을 주는 목표를 설정합니다. (북을 울려 ‘진격하라’는 큰 방향을 제시)
    • Key Results (핵심 결과): “주간 활성 사용자 수 15% 증가”, “평균 사용 시간 10분 연장”과 같이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결과 지표를 설정합니다. (깃발을 흔들어 ‘저 언덕을 점령하라’는 구체적인 지점을 제시)

    OKR을 통해 전 직원은 회사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자신의 업무가 그 목표 달성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구체적으로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혼란스러운 시장 상황 속에서도 조직 전체가 한 방향으로 힘을 모으게 하는 강력한 ‘신호’가 됩니다.


    기세를 활용하여 승리하라

    결론적으로 손자병법 ‘세’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리더의 진정한 역량은 비범한 개인을 통솔하는 능력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을 모아 비범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능력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유능한 장수가 지형의 이점을 활용하여 최소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위해 리더는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안정적인 핵심 역량(‘정’)과 혁신적인 도전(‘기’)이 조화롭게 순환하는 사업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안정적인 수익 기반 위에서만 과감한 혁신이 가능하며, 혁신의 성공이 다시 핵심 역량을 강화하는 선순환이 기세를 만듭니다.

    둘째, 개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기보다, 시스템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는 조직 구조(‘형’)를 설계해야 합니다. 구성원들에게 명확한 역할과 책임을 부여하고, 자율성을 존중하여 현장에서 창의적인 해법이 나오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셋째, 조직의 목표와 방향을 모든 구성원이 오해 없이 이해할 수 있는 명확하고 단순한 ‘신호’ 체계를 구축해야 합니다. 전략은 공유될 때 비로소 힘을 얻으며, 이것이 조직 전체를 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한번 만들어진 기세는 강력한 만큼 통제하기 어렵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기세는 조직을 순식간에 파멸로 이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리더는 끊임없이 시장의 변화를 읽고, 우리가 만든 ‘기세’가 올바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성찰하며 미세하게 조정하는 역할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고수는 기세를 만드는 것을 넘어, 만들어진 기세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