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으르렁대는 팀원들을 데리고 불가능에 가까운 프로젝트를 성공시켜야 하는 리더. 오늘날 많은 조직의 관리자들이 겪는 이 딜레마는, 사실 1800년 전 삼국 시대의 영웅 조조가 이미 풀어냈던 문제입니다. 215년, 손권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 절체절명의 합비(合肥) 방어전. 이곳을 지키는 병력은 고작 7천이었고, 지휘관으로 남겨진 장료, 이전, 악진은 서로를 불신하고 반목하는 사이였습니다. 특히 장료와 이전은 평소 말을 섞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빴습니다.
이 상황에서 조조는 현장에 없었습니다. 그는 단지 밀봉된 편지 한 통, 즉 ‘금낭지계(錦囊之計)’를 남겨두었을 뿐입니다. 이 낡은 이야기 속에는 갈등하는 팀원들에게 명확한 역할과 책임을 위임하고, 그들의 잠재력을 폭발시켜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현대 리더십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부서 이기주의’와 ‘팀원 간의 갈등’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힌트를 조조의 금낭지계에서 찾아봅니다.
최악의 팀워크, 최고의 성과를 만들다
세 명의 장수, 세 개의 다른 생각
합비를 지키던 세 명의 장수는 각자 다른 강점과 성향을 가진, 그야말로 ‘어벤져스’ 같은 팀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팀워크는 최악에 가까웠습니다.
- 장료(張遼): 여포의 부하였던 항장(降將) 출신으로, 개인의 용맹과 돌파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공격수.
- 이전(李典): 조조의 창업 공신 집안 출신으로, 신중하고 학식이 깊었으나 앙숙이었던 여포의 부하 장료를 극도로 싫어했습니다.
- 악진(樂進): 가장 낮은 신분에서 시작해 오직 실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용장으로, 수비의 달인.
평소에도 서로를 불신하던 이들에게, 손권의 10만 대군이라는 위기는 곧 팀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공동의 목표 앞에서 각자의 입장만 내세우는 ‘부서 이기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밀봉된 편지, 리더의 명확한 지침
조조가 남긴 편지의 내용은 단순하고 명확했습니다. 봉투에는 “적이 오면 뜯어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안의 지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손권이 오거든, 장료와 이전은 나가서 싸우고 악진은 성을 지켜라. 호군 설제는 참전하지 말라.”
이 지시는 단순히 싸우고 지키라는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갈등하는 팀을 하나로 묶는 조조의 놀라운 리더십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 명확한 역할 분담(R&R): 조조는 각자의 강점에 맞는 역할을 정확히 지정해주었습니다. 최고의 공격수인 장료와 신중한 이전에게는 ‘공격’을, 최고의 수비수인 악진에게는 ‘수비’를 맡겼습니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할지 분명해지자, 이견을 제시할 명분이 사라졌습니다.
- 공동 책임 부여: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이가 나쁜 장료와 이전을 ‘함께’ 출전시킨 것입니다. 이는 “너희 둘의 사적인 감정은 접어두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함께 책임지라”는 강력한 메시지였습니다. 혼자서는 임무를 완수할 수 없도록 만들어, 억지로라도 협력하게 만든 것입니다.
- 최고 책임자 지정: 동시에 조조는 이 작전의 간판(책임자)으로 장료를 지목했습니다. 모두가 반신반의하는 위험한 작전이었지만, 장료는 조조가 자신을 믿어준다는 사실에 감격하여 목숨을 걸고 싸울 동기를 얻었습니다.
신뢰의 힘: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라”
조조의 지시를 받은 이전은, 평소 그토록 싫어했던 장료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국가의 대사요. 나의 사사로운 감정이 어찌 중요하겠소. 장군(장료)의 계책을 따르겠소.”
리더의 명확한 지침과 신뢰가 ‘부서 이기주의’의 벽을 허물고, 공동의 목표를 향한 ‘원팀(One Team)’을 만들어낸 극적인 순간이었습니다. 결국 장료는 800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손권의 10만 대군에 뛰어들어 본진을 유린했고, 손권은 평생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안고 도망쳤습니다. 이 합비 전투는 삼국지 역사상 가장 극적인 승리 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장료는 ‘울던 아이도 그 이름을 들으면 울음을 그친다(遼來來)’는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기적의 시작은 현장에 없었던 리더, 조조의 ‘금낭지계’였습니다. 그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명확한 위임과 절대적인 신뢰를 통해 팀원들이 스스로 최고의 성과를 내도록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조직을 위한 ‘금낭지계’
조조의 리더십은 오늘날의 관리자들에게 강력한 교훈을 줍니다. 부서 간의 벽이 높고, 팀원들이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면, 리더는 다음의 ‘금낭지계’를 준비해야 합니다.
1. ‘무엇을’이 아닌, ‘누가, 어떻게’를 명확히 하라
“열심히 해보자”와 같은 모호한 구호는 갈등 상황에서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리더는 각 팀원과 부서의 역할(Role)과 책임(Responsibility)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공유해야 합니다. 특히 갈등 관계에 있는 팀원들에게는 의도적으로 ‘공동 책임’을 부여하여,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개인의 감정보다 조직의 목표가 우선이라는 원칙을 세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2. 현장에 답이 있다는 착각을 버려라 (위임의 기술)
많은 리더가 모든 것을 직접 챙겨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조조는 현장에 없었기에 오히려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세 장수의 성향과 강점을 냉철하게 분석하여 최적의 조합을 만들었습니다. 훌륭한 리더는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를 믿고 그들에게 전적으로 권한을 위임하는 사람입니다. ‘맡겼으면 의심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정한 신뢰입니다.
3. 평가는 개인의 성과가 아닌 ‘협업의 성과’로 하라
합비 전투의 공은 장료에게 가장 크게 돌아갔지만, 조조는 이전의 공 또한 잊지 않고 칭찬하며 보상했습니다. 만약 장료의 개인 플레이만 인정했다면, 팀은 다시 와해되었을 것입니다. 조직의 평가 시스템이 개인의 성과보다 ‘협업 지표’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줄 때, 직원들은 비로소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 동료와 손을 잡기 시작합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이 부서별 평가 대신 ‘항공기 정시 이륙’이라는 공동 목표를 평가 지표로 삼아 성공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결론적으로, 갈등은 조직의 당연한 속성입니다. 중요한 것은 갈등을 없애려는 노력이 아니라, 갈등을 뛰어넘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고, 각자의 역할을 명확히 해주며, 그들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끝까지 믿어주는 리더십입니다. 당신의 서랍 속에 잠자고 있는 ‘금낭지계’를 꺼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일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