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들에서 우리는 개인의 머릿속에 잠자고 있는 보석, ‘암묵지’와 조직의 성장을 위한 뼈대, ‘형식지’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지식은 어떻게 서로 연결되고, 어떻게 새로운 지식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한 명의 뛰어난 전문가가 가진 ‘감’과 노하우는 어떻게 팀 전체의 역량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가장 탁월한 해답 중 하나가 바로 일본의 경영학자 노나카 이쿠지로와 다케우치 히로타카가 제시한 SECI 모델, 즉 지식창조 메커니즘입니다. SECI 모델은 지식이 단순히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네 가지 단계를 거치며 역동적으로 순환하고 변환되면서 창조된다고 설명합니다. 이 글에서는 그 위대한 지식창조 여정의 첫 두 단계인 공통화(Socialization) 와 표출화(Externalization) 에 초점을 맞추어, 보이지 않는 지식이 어떻게 관계 속에서 공유되고, 마침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지 깊이 있게 탐구해 보겠습니다.
목차
- 서론: 지식은 어떻게 창조되는가? SECI 모델의 탄생
- SECI 모델의 네 가지 순환 고리: Socialization, Externalization, Combination, Internalization
- 1단계 – 공통화(Socialization): 경험의 공명을 통한 암묵지의 확장
- 정의: 암묵지에서 암묵지로 (Tacit to Tacit)
- 공통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함께 겪고, 느끼고, 대화하기
- 데이터 분석가와 PO를 위한 공통화 활용 전략
- 2단계 – 표출화(Externalization): 생각을 언어로, 직관을 모델로
- 정의: 암묵지에서 형식지로 (Tacit to Explicit)
- 표출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은유, 유추, 그리고 대화
- 데이터 분석가와 PO를 위한 표출화 활용 전략
- 결론: 모든 위대한 지식의 시작, 공통화와 표출화
1. 서론: 지식은 어떻게 창조되는가? SECI 모델의 탄생
1990년대, 서구 기업들이 정보 기술과 시스템을 통해 지식을 ‘관리’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에 주목한 노나카와 다케우치는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식은 관리의 대상이기 이전에, 어떻게 ‘창조’되는가?” 그들은 도요타, 혼다, 캐논과 같은 성공적인 일본 기업들을 연구하며, 이들 조직의 혁신이 단순히 데이터를 처리하고 정보를 분석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과 경험 공유를 통해 새로운 지식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과정에서 비롯됨을 발견했습니다.
SECI 모델은 바로 이러한 통찰을 바탕으로, 지식이 암묵지와 형식지라는 두 가지 형태 사이를 오가며 공통화(Socialization) → 표출화(Externalization) → 연결화(Combination) → 내면화(Internalization) 라는 네 가지 변환 과정을 거쳐 나선형으로 증폭되고 발전한다는 이론을 제시합니다. 이는 지식을 정적인 결과물이 아닌,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같은 동적인 프로세스로 바라보는 혁신적인 관점이었습니다. 특히 제품 개발과 같이 수많은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프로덕트 오너와 데이터 분석가에게 SECI 모델은 개인의 직관과 팀의 집단지성을 연결하여 혁신을 이끌어내는 매우 실용적인 프레임워크를 제공합니다.
2. SECI 모델의 네 가지 순환 고리: Socialization, Externalization, Combination, Internalization
SECI 모델의 네 단계는 지식 창조의 순환 고리를 형성합니다.
- 공통화 (Socialization): 암묵지를 암묵지로 전달하는 과정.
- 표출화 (Externalization): 암묵지를 형식지로 변환하는 과정.
- 연결화 (Combination): 형식지를 다른 형식지와 결합하여 새로운 형식지를 만드는 과정.
- 내면화 (Internalization): 형식지를 다시 개인의 암묵지로 체화하는 과정.
이 네 단계가 나선형처럼 반복되면서, 개인의 지식은 집단의 지식으로, 다시 조직 전체의 지식으로 확장되고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이 중 첫 두 단계인 공통화와 표출화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3. 1단계 – 공통화(Socialization): 경험의 공명을 통한 암묵지의 확장
지식 창조의 첫걸음은 ‘만남’과 ‘경험의 공유’에서 시작됩니다. 공통화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암묵지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직접 전달되고, 서로의 경험이 공명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집단적 암묵지로 발전하는 과정입니다.
정의: 암묵지에서 암묵지로 (Tacit to Tacit)
공통화는 공식적인 교육이나 문서 없이, 사람들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관찰, 모방, 그리고 실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 핵심: 직접적인 경험의 공유
- 비유: 갓 들어온 신입 요리사가 선배 요리사의 어깨너머로 칼질하는 법, 재료를 다듬는 순서,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감’을 배우는 것. 선배는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하지 않지만, 신입은 함께 일하는 과정 속에서 그 노하우를 자신의 몸으로 습득합니다.
공통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함께 겪고, 느끼고, 대화하기
공통화는 비공식적이고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활발할 때 가장 잘 일어납니다.
- 도제식 교육 및 멘토링: 전문가와 초심자가 함께 일하며 기술과 노하우를 자연스럽게 전수하는 과정.
- 브레인스토밍 및 비공식적 대화: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누는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과 직관이 공유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촉발됩니다. 커피 타임이나 점심시간의 잡담이 때로는 공식적인 회의보다 더 중요한 지식 공유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 현장 방문 및 고객 인터뷰: 팀원들이 함께 고객이 있는 현장을 방문하고, 그들의 환경과 행동을 직접 관찰하며 느끼는 ‘공감대’는 어떤 보고서보다 강력한 집단적 암묵지를 형성합니다.
데이터 분석가와 PO를 위한 공통화 활용 전략
- 페어 워크(Pair Work) 적극 활용: 두 명의 분석가나, 분석가와 PO가 함께 화면을 보며 데이터를 탐색하고 분석하는 ‘페어 분석(Pair Analytics)’을 시도해 보세요. 한 사람이 생각지 못한 부분을 다른 사람이 발견하고, 서로의 분석적 사고방식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습니다.
- 사용자 조사 동행: PO가 사용자 인터뷰를 진행할 때, 데이터 분석가나 개발자가 참관인으로 함께 참여하게 하세요. 사용자의 표정, 말투, 주변 환경에서 오는 비언어적 정보(암묵지)는 숫자 데이터만으로는 알 수 없는 깊은 공감대와 이해를 팀 전체에 형성시켜 줍니다.
- 데이터 ‘썰’ 풀기 세션: 정기적으로 팀원들이 모여 “최근에 분석하면서 발견한 신기한 데이터나 패턴은 없었나요?”와 같이 가볍게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세요. 이는 개인의 분석 경험을 팀 전체의 집단적 암묵지로 확장하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4. 2단계 – 표출화(Externalization): 생각을 언어로, 직관을 모델로
공통화를 통해 공유되고 증폭된 암묵지는 어느 순간 구체적인 형태로 세상 밖으로 표출될 필요가 있습니다. 표출화는 지식 창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단계로, 머릿속에만 있던 주관적이고 모호한 암묵지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형식지로 변환하는 과정입니다.
정의: 암묵지에서 형식지로 (Tacit to Explicit)
표출화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직관과 아이디어를 언어, 모델, 그림, 공식 등 명시적인 형태로 끄집어내는 지적 도전의 과정입니다. 이는 자신의 생각을 명료화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검증 가능한 대상으로 만드는 첫걸음입니다.
- 핵심: 암묵지의 개념화 및 모델화
- 비유: 베테랑 영업사원이 가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 대화의 기술”(암묵지)을 분석하여, “고객 유형별 핵심 질문 리스트와 응대 시나리오”(형식지)라는 영업 매뉴얼을 만들어내는 과정.
표출화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은유, 유추, 그리고 대화
암묵지를 형식지로 꺼내는 과정은 논리적 분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창의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 대화와 토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질문에 답하는 과정은 머릿속에 있던 모호한 생각을 명료하게 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은 자신의 생각의 맹점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 은유(Metaphor)와 유추(Analogy): 새롭고 복잡한 개념을 설명할 때, 사람들에게 이미 친숙한 다른 개념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은 이해를 돕는 강력한 방법입니다. (예: “블록체인은 모두가 함께 쓰는 공유 장부와 같습니다.”)
- 모델링과 시각화: 복잡한 시스템이나 프로세스에 대한 자신의 이해(암묵지)를 플로우차트, 다이어그램, 프로토타입과 같은 시각적 모델(형식지)로 표현하면, 다른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고 논의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데이터 분석가와 PO를 위한 표출화 활용 전략
- 가설 설정 문서화: 분석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라는 가설을 가지고 있으며,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 데이터를 ~ 방법으로 분석할 것이다”와 같이 분석의 설계도를 명확한 문서(형식지)로 작성하세요. 이는 분석가의 머릿속에 있는 분석 계획(암묵지)을 구체화하고, 다른 팀원들과 공유하며 피드백을 받는 중요한 과정입니다.
- 사용자 페르소나 및 여정 지도 제작: 수많은 사용자 인터뷰와 데이터 분석을 통해 얻은 사용자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암묵지)를, 구체적인 특징을 가진 가상의 인물인 ‘페르소나’와 그들의 경험을 시각화한 ‘고객 여정 지도'(형식지)로 만들어보세요. 이는 팀 전체가 사용자에 대한 공통된 그림을 그리고 제품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데이터 스토리텔링: 분석 결과를 단순히 차트와 숫자로 나열하는 데 그치지 말고,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형식지)로 구성하여 발표하세요. 분석의 배경, 발견한 핵심 인사이트,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제언으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은 청중의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는 가장 효과적인 표출화 방법입니다.
5. 결론: 모든 위대한 지식의 시작, 공통화와 표출화
지식 창조의 나선은 항상 공통화와 표출화에서 그 첫 바퀴를 돌기 시작합니다. 사람들 사이의 따뜻한 만남과 경험의 공유(공통화)가 없다면 지식은 싹을 틔울 수 없으며, 머릿속의 영감을 구체적인 언어와 모델로 끄집어내는 치열한 지적 분투(표출화)가 없다면 지식은 결코 꽃을 피울 수 없습니다.
프로덕트 오너와 데이터 분석가에게 이 두 단계는 특히 중요합니다. 우리는 동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고객과 함께 호흡하며 시장에 대한 깊이 있는 암묵지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암묵지에만 머무르지 말고, 그것을 명확한 가설, 설득력 있는 보고서, 구체적인 제품 요구사항이라는 형식지로 용기 있게 표출해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개인의 번뜩이는 직관은 팀 전체의 집단지성으로 발전하고, 마침내 시장을 움직이는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로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지식 창조는 결코 혼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동료에게 먼저 다가가 커피 한 잔을 청하며 여러분의 경험을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요? 위대한 혁신은 바로 그 작은 대화에서 시작될 수 있습니다.